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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권

염전노예 국가배상소송 1심 일부 승소

 

 

  지난 20179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장애인들을 외딴 섬으로 유인해 노예로 부린 이른바 염전노예사건을 국가가 방조하였거나 미리 막지 못한 책임을 일부 인정해 8명의 피해자 중 1명에 대하여 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염전노예 사건은 20141월 전남 신안군 신의도 염전에 감금돼있던 시각장애인 김모씨가 구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불법 직업소개업자에 의해 유인되어 신의도에 들어가게 된 시각장애인 김모씨는 염전일이 고되어 수차례 염전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습니다. 염전주와 유착된 것으로 보이는 경찰이나 공무원에게는 감히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고, 용기를 내어 서울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서 부쳤습니다. 김씨의 어머니는 편지를 받고는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하였고, 신고를 받은 경찰이 신의도로 급파되어 염전노예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공변의 변] 나는 노예가 아닙니다 – 전남 신안군 염전노예 사건에 부쳐 (염형국 변호사)

[활동소식] 염전지역 장애인 인권침해 조사결과 보고 및 대책마련 토론회

[공변의 변] 국가와 지자체가 염전노예 책임져야 한다

 

  경찰 수사 결과, 김씨가 일했던 염전의 주인은 불법 직업소개업자로부터 70만원에 김씨를 넘겨받아 부당하게 일을 시켰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 정부가 민·관 합동 전수조사에 나섰고 63명의 염전노예 피해자가 확인되었습니다. 피해자 중 상당수가 장애인이었는데, 염주들은 이들이 지능이 낮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 등을 악용해 숙식 제공을 빌미로 임금을 주지 않고, 수시로 폭행하는 등 이들을 자신의 노예로 부렸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었고, 그 지역에서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며, 지척에 파출소와 면사무소가 있었지만 주민을 보호해야할 이들은 오히려 이러한 관행을 묵인하거나 방조했고, 그럼에도 누구도 이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201511, 장애인단체 등 30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만든 염전노예장애인사건 재발 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경찰과 근로감독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관리·감독 소홀로 염전노예 사건이 벌어졌다며 피해자 8명에 대리하여 각 3천만원씩 총24000만원 상당의 국가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염전주의 학대로부터 피하고자 도움을 요청했던 신의도 파출소의 경찰관은 탈출을 돕기는커녕 염전주를 불러 2차례나 피해자를 다시 악몽같은 현장으로 돌려보냈고, 섬에서 실종장애인이 발생하면 보호자를 확인하고 신속히 복귀에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함에도 경찰은 장애인을 염전주의 집에 기거하며 염전일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염전주로부터 식칼에 찔려 이 사실을 파출소에 신고하였지만, 파출소 경찰관들은 오히려 염전주를 불러 피해장애인을 데려가게 하였습니다. 또한 근로감독관은 정기적으로 염전 사업장을 감독해야 함에도 이러한 직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해당 지자체는 지역에 복지지원이 필요한 요보호자를 확인하고, 염전노예 학대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요보호자에 대한 복지지원조치를 하지 않았고, 염전노예 학대사실을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소송과정에서도 국가 측 대리인은 버젓이 존재하는 경찰 산하 시민감찰위원회의 존재를 모른다고 하거나 원고의 문서제출명령에 대해 당시 근무하였던 파출소 경찰관들의 명단을 누락하여 제출하거나 징계처분의 구체적인 사유가 적힌 문서를 끝내 제출하지 않는 등 원고가 요청하는 증거의 제출요구를 의도적으로 회피하거나 지연시키며, 원고의 입증을 방해하고, 나아가 재판부를 우롱하였습니다.

 

 

  1심 재판부는 외딴 섬에서 생활하던 박씨가 도움을 요청할 유일한 대상인 경찰이 보호의무를 저버렸다며, 피해자가 느꼈을 당혹감과 좌절감을 고려해 국가가 청구금액인 3천만원을 모두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피해자 7명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호의무를 다하지 않았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청구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고, 그외에 국가가 장애인을 상대로 한 불법 직업소개를 감독하지 못한 점이나, 관할 지자체가 이들에게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1심 법원이 경찰의 염전노예 피해자들 구호요청을 외면하고, 오히려 가해자인 염전주에게 피해자의 신원을 인계하는 등 범죄피해자에 대한 구호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에 대해 그 책임을 인정하고 원고의 청구금액 전액을 인정한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판결입니다. 그러나 원고의 청구에 따라 성실하게 관련 자료를 제출하여야 할 소송법상 의무가 있는 국가가 원고의 입증을 의도적으로 방해하였던 점에 대해 그 책임을 묻지 않고 “(청구가 인정되지 않은 나머지 원고 7명이) 피해자인 사실은 인정되지만,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 등의 고의나 과실에 따른 위법한 공무집행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나머지 원고들에 대한 청구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부당한 측면이 있습니다.

 

 

  염전노예 사건이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지 않게 하려면 국가 및 지자체의 국민에 대한 기본권보장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에 대한 철저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는 단지 몇몇 책임질 공직자를 밝혀내고, 몇푼 배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는 누구를 위해서 존재하는지, 국가의 인권보장의무는 구체적으로 개인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는 작업입니다. 청구가 인정되지 않은 원고들 중 일부는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의 보다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_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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