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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

성전환남성 5명 성별정정 허가 결정


 

“저 보다는 젊은 친구들이 이번에 성별정정이 꼭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제 나이가 많아서 성별정정이 된다면 혼인신고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청했지만, 성별정정이 꼭 필요한 것은 오히려 저보다 젊은 친구들입니다. 성별정정이 되지 않는다면 제가 20년 넘게 겪었던 방황과 절망을 저들도 똑같이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저와 같은 방황과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별정정 허가 심문기일에서, 성별정정 신청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신청인이 판사 앞에서 한 진술이다. 당사자들의 절박함이 그대로 전해진 걸까. 서울서부지방법원은 2013. 3. 15. 성기 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성전환남성(FTM) 5명에 대해 성별정정을 허가했다. 대법원 판례와 예규에서 요구하고 있던 ‘반대 성으로서의 외부성기’를 성전환자 성별정정의 전제 조건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이번에 신청인들은 경제적 이유, 건강상 이유 등으로 성기 성형 수술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나는 이번에 성전환자 성별정정 사건을 대리하면서, 이들이 법적 성별의 불일치 때문에 겪게 되는 고통을 생생하게 전해 듣게 되었다. 지옥 같았다는 학창시절, 취업 면접 과정에서 겪었던 차별과 모멸감, 신분증에서 드러나는 성별의 불일치 때문에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평생 한 번도 투표소에 가지 못했다는 사연 등. 이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성별정정을 위해 요구되는 제도적 장벽과 사회적 차별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한국 대법원의 판례와 예규에서는 성전환자 성별정정을 위해 [ 정신과적 성전환증 진단 – 성전환 수술 – 생식능력 상실 ]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성별정정을 인정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매우 엄격한 편이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2011년 “성전환법에서 이들에게 성기를 변형하고 생식 무능력을 초래하는 수술을 무조건 요구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권리와 신체적 완전성에 대한 권리를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고, 세계성전환자보건전문가협회는 “전환된 성에 맞는 생식기의 형성은 사회적 성별 인식에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아니고, 법적 성별을 정하는 데에 전제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오히려 “법적 성별 정정은 새로운 정체성으로 사회적 기능을 하는 데에 중요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외과수술이 행해지기 전에 먼저 있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성전환자에 대한 의료적 조치와 법적 성별 정정의 전제 조건은 구별・분리되어야 하며, 성전환자들이 취업 등 안정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법적 성별정정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신청 사건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대법원 판례와 예규에서 요구하고 있는 성전환자 성별정정의 요건을 완화해보자는 차원에서 처음에 기획되었다.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는 성적지향(sexual orientation), 성별정체성(gender identity)과 관련된 인권 신장 및 차별 시정을 위한 법제도․정책 분석과 대안 마련을 위해 2011년 8월 발족한 연구회로 활동가, 연구자, 국내외 변호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연구회 회원이자 이번 신청 사건의 당사자가 처음 제안을 하고,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의 한가람 변호사가 주심을 맡고, 희망법의 류민희 변호사, 조혜인 변호사와 내가 공동 대리를 맡았다.

 

사실, 나는 이번 법원 결정 이후에 일어나는 일들로 더 놀라고 있다. 이번 법원 결정에 관한 기사가 나가자, 성전환자 법적 성별정정에 대한 사연들이 예상보다 더 많이 들어오고 있다. 이번 사건과 비슷한 사례도 많고, 다른 사연들도 있다. 한국 상황에 절망하여 외국으로 갔다가 기사를 접하고 연락하신 분들도 있다. 2006년 성전환자 성별정정에 대한 대법원 결정, 17대 국회에서의 성전환자 성별변경에 대한 특례법 제정운동 이후에, 운동의 동력이 없다는 이유로,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사회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성전환자 성별정정의 제도적 장벽으로 인한 고통은 성전환자 개개인들의 몫이었다.

 

결과적으로 특별법 제정에는 실패했지만, 예전에 소설가 김홍신 씨가 16대 국회의원일 때, ‘성전환자성별변경에관한특별법안’을 대표발의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왜 극히 소수에 불과한 성전환자들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하는지 의아하게 물어봤다. 그때 김홍신 의원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숫자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처절한 문제가 성전환자 본인들에게 존재하게 됩니다. 외모로 드러나는 성별과 신분증명서상의 성별이 정반대라는 이유 때문에 그들에게 다가오는 따가운 시선과 거부의 몸짓은 그들이 감내하기 너무 벅찬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는 삶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고통 이상인 것입니다. 학교에 들어갈 때, 직장을 구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하는 수많은 일상생활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거부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보면 1%도 안 되는 미미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한 명인 성전환자 개인에게는 100% 이상의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없어 인권이 유린되어 왔고 법이 있어 인권이 지켜질 수 있다면 이제는 법은 만들어서 인권을 되돌러 주었으면 합니다. 이것이 입법부로서 국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글_장서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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