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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수자

너무 예민하다고? –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학교폭력 토론회

 

▲ 지난 11월 20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학교폭력 토론회’가 열렸다

 

 

어릴 적의 기억

 

중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다. 무법 지대나 다름없는 중학교 2학년의 교실 쉬는 시간, 평소에는 왁자지껄 시끄럽던 교실이 그날따라 조용하게 느껴졌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갑자기 교실 한가운데서 누군가가 외쳤다.

 

“호모 **!”

 

소리친 학생은 늘 담배 냄새를 풍기는, 다른 아이들이 슬슬 눈치를 보는 아이였다. “호모 **”라는 말을 들은 학생은 보름달 같은 뽀얀 얼굴에, 늘 조근조근한 말투로 이야기하던 남자애였다.

순간 온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소리친 아이도, 그런 말을 들은 아이도, 다른 아이들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말이다. 분명 그 말은 의미 없는 울림은 아니었다. 모두 멈칫했고, 얼굴이 굳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주먹다툼이 오가지도 않았다. 잠시 어색한 순간이 흐른 뒤, 모두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 장면은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박혀 있다.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았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는데, 분명 그 사건은 강렬한 임팩트가 있었다.

 

 

*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을 보실 수 있는 블로그로 이동합니다.

 

▲ [도표]미네소타 주 Anoka-Hennepin 교육구의 ‘중립정책’의 역사

 

 

중립 정책이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

 

미국의 미네소타 주 Anoka-Hennepin 교육구에는 ‘중립 정책’이라는 정책이 있었다. 이 정책은 애초에 1988년 에이즈 예방 및 교육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가, 그 뒤 1995년 ‘동성애 치유 프로그램’이 추가되면서 동성애를 가르치거나 정상적/가치 있는 삶의 방식으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으로 발전되었고, 그 뒤 2009년 성적 지향성에 관련해서는 교직원들이 중립적 입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른바 ‘중립 정책’으로 대체된 것이다.

 

이 ‘중립 정책’은 과연 중립적이었을까?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중립 정책’이 시행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Anoka-Hennepin 교육구에서는 9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중 많은 숫자가 실제 동성애자여서 또는 동성애자로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괴롭힘을 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2011년에 6명의 집단괴롭힘 피해 학생들이 교육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교육구는 앞으로 교육구 내의 집단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할 것에 합의했다. 이 합의 이후, 성소수자 학생들을 상대로 한 집단괴롭힘이 실제로 줄어들었으며, 2012년 교육구는 ‘중립 정책’을 폐기했다. 현재 미국 내 9개의 다른 주에서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이 주들은 대부분 보수적인 남부에 위치한 주들로 – 앨라배마, 애리조나,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 유타 – 이 중 어느 주에서도 동성애자 인권에 관한 긍정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립 정책’이 중립적일 수 없는 이유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는 그 발언 뒤에 사실은 동성애자 학생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드러내 놓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무의식중에 숨어 있는 편견은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이 발생했을 때 사건에 대한 소극적 대처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산 사건과 유사한 Seth Walsh 사건에서, Seth가 다니던 학교 당국자들은 피해 학생으로부터 괴롭힘 신고를 수차례 접수하고도 가해자 학생들을 불러 꾸지람을 하는 정도의 소극적인 대처에 그쳤고, 결국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피해 학생이 자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 ‘중립 정책’을 시행하던 미네소타 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육구에 제기된 소송에 결정적인 영향을 ** Justin Aaberg의 죽음을 두고, Justin의 어머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성적 지향성에 대해 (부정적이건 긍정적이건) 어떠한 언급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립 정책’ 때문에 교사들이 집단괴롭힘 피해 학생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움을 줄 수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 2013.11.20. <성소수자 학생에게 가해지는 학교폭력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주제로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국회의원 장하나, 배재정 의원실이 공동주최한 토론회
 

 

성소수자 청소년과 자살

 

 한국청소년개발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성소수자 청소년들 중 70~80%는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으며, 약 50%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 비율이 높다는 것을 고려해도, 이것은 매우 높은 수치이다. 미국 정부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아도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자살 시도 비율은 비 성소수자 청소년에 비해 네 배나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죽음을 생각할까? 나는 이것이 예전부터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동성애 혐오를 성소수자 청소년들이 자각하며 자라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존재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청소년들은 자기혐오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 상황에서 들리는 혐오성 발언 한 마디는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매일같이 주먹다툼이 오고 가던 중학교 교실에서의 기억들 중 유일하게 이 글의 앞에서 언급한 사건만이 뇌리에 박혀 있다는 것은, 그 말 한 마디의 폭력성을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인지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회에 혐오가 숨어 있고, 그 혐오가 자신에게도 내재되어 끊임없이 자신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아무도 자신을 받아 주거나 이해해 주지 않는데, 거기에다 그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더하는 것은 성소수자 청소년들을 벼랑 끝으로 모는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린 청소년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자기 자신만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가 되기 쉽다. 이것이 동성애혐오성 괴롭힘이 다른 집단괴롭힘보다도 더 심각한 이유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과 공감해주고 자신을 지지해줄 수 있는 소중한 한 사람이며, 이것을 위해서는 먼저 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중학교 교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이 모여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진 사례가 있고, 한 고등학교에서는 해외 사례처럼 동성애자-이성애자 연대를 조직하여 동성애자 학생들을 지지하는 활동을 펴고 있다고 한다. 아직 성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지식은 부족할 수 있지만, 적어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이러한 학교와 교사들의 변화를 본 학생들 또한 누군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괴롭히고 따돌리고 무시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_김지연(18기 자원활동가)

 

[캠페인 동영상] Stand Up! – Don’t Stand for Homophobic Bullying

http://www.youtube.com/watch?v=lrJxqvalFxM

– 아일랜드 교육부가 성소수자 청소년에 대한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동영상

 

[관련기사]

– 동성애자 남학생에게 ‘걸레년’, 심한 괴롭힘 아니다? (프레시안 2013.11.20.)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2&aid=0001996080&sid1=001&lfrom=twitter

– 성소수자 학생에 대한 학교폭력 막아야 (비마이너 2013.11.20.)

http://beminor.com/news/view.html?no=6143&section=1&category=3&loctype=mview

 

※ 공감 첫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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