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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이주와 난민

귀화불허처분취소소송 승소하다_20180524

  “국적법 등 관계 법령 어디에도 외국인에게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할 권리를 부여하였다고 볼 만한 규정이 없다.”(대법원 2010. 7. 15. 선고 200919069 판결) 귀화허가 결정을 하는 법무부장관은 귀화신청인이 법률이 정하는 귀화요건을 갖추었다고 하더라도 귀화를 허가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재량권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행정청이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 재량이 인정되고 그 재량이 넓다 하더라도 그것은 처분을 자의적으로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연관성 있는 사정을 모두 고려하고, 처분의 이유가 합당하고 합리적인 것이어야 한다. 입법자가 행정청에 재량을 부여하는 취지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남아시아 출신 A1997년 산업연수생으로 처음으로 한국땅을 밟았고, 2년 뒤 체류기간 만료로 귀국했다. A22녀 중 장녀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다시 한국에서 일하고자 하였으나, 산업연수생으로 재입국하는 데 제한이 있어서 결국 생년월일이 다른 여권으로 산업연수생 체류자격을 받았다. 그런데 재입국 후 A는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 4개가 눌리는 산재를 당하였다. 다행히 많은 도움을 준 한국인 관리자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가까워져서 교제를 하다가 결국 미래를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2004년 두 사람은 혼인하기 위해 A의 본국으로 출국했고, 그로부터 수개월 후 A는 한국인의 배우자로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A는 원래 생년월일이 기재된 여권을 사용했다. 2007년 아이가 태어났고, 2012A는 영주체류자격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2013년 단란한 가족생활에 갑작스런 위기가 찾아왔다. 출입관리사무소에서 A의 위명여권 사용전력을 이유로 영주체류자격을 취소하고 출국하라는 명령을 한 것이다. A는 결국 2013. 3. 18. 자진출국하였다. 그런데 출국보다 더 큰 문제는 위명여권 사용전력이 있는 외국인에 대해 실무상 부과하는 10년의 재입국금지규제였다. 잘못하면 이산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당시 사안에 대해 알게 된 공감은 탄원서 제출 등 사건 지원을 하였고, 불행 중 다행으로 2013. 3. 25. A는 혼인관계 유지 및 자녀양육 등 인도적 사유로 입국규제 유예결정을 받았다. 이후 A는 재차 결혼이민 체류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2013. 7. 9. 드디어 가족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A는 외국인으로서 일상적으로 받는 차별은 물론, 한국인 아이를 키우면서 크고 작은 제도적 장벽과 부딪치게 되었다. 일례로 아이 눈 주위에 종양이 생겨서 수술을 받을 때, 처음에는 A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지만 보호자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접수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이 다시 아이를 데리고 가서야 진료와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들과 어머니의 국적이 다르다보니 A는 부모임을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외국인임을 자각하게 하고 부모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은 A에게 온전한 부모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안겨주었고, 이미 한번 엄마가 쫓겨나는 일을 겪은 아들도 엄마가 국적이 없어서 다른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라고 묻는 등 자녀에게도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했다. 결국 A는 온전한 부모역할을 하기 위해 귀화허가신청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법무부장관은 A에게 품행미단정을 이유로 귀화허가 불허결정을 하였다. 왜 품행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본 것인지는 처분서에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소송에 와서야 법무부는 13년 전의 위명여권 전력이 불허처분의 유일하고 결정적 이유였음을 밝혔다. 법무부는 특히 위명여권 행사는 13년 전의 일이지만 적발시를 기준으로 할 때 시간이 충분히 경과되지 않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행위시부터가 아닌 적발시부터 경과한 기간을 산정해서 귀화허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품행이 단정한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 제재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명확한 기준과 법령상 근거 없이 가하는 제재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입법자가 법무부장관에게 부여한 귀화허가 심사권한을 제재를 가하는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귀화제도의 목적이나 입법취지에도 맞지 않다.

 

  서울행정법원(2018. 5. 24. 선고 2017구합89315 사건)은 결국 다음과 같이 판시하며 A의 손을 들어주었다. “국적법 제6조 제2, 5조 제3호는 간이귀화 및 일반귀화의 요건 중 하나로 품행이단정할 것을 들고 있는바, 여기서 품행이 단정하다는 것은 당해 외국인의 성별, 연령, 직업, 가족, 경력, 전과관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그를 우리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여 주권자이 한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데 지장이 없는 품성을 갖추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한다. … 위와 같이 원고는 위명여권을 사용한 전력 외에 아무런 범죄전력 없이 생활해왔고 기본소양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의 생활 기반이 확고한 것으로 보이는 점, 위명여권을 사용하여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한 시점은 원고가 귀화허가신청을 한 때로부터 약 13년 전이고 그 이후 원고는 합법적인 체류자격을 얻어 장기간 대한민국 법을 준수하며 생활해 온 점을 고려하면, 비록 원고의 출입국관리법 위반행위가 가볍지 않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꾸려 범법행위 없이 성실히 생활해 왔음에도 오래전 위명여권사용 사실만을 근거로 원고가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기에 필요한 품성 및 행동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A는 한국인의 가족으로서 이미 한국사회의 실질적 구성원이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당연시되는 한국사회는 A를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그리고 법무부는 자의적 기준을 들이대며 공식적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달라는 A의 간절한 요청을 외면하였다. 한편 정부는 그 동안 국제결혼가정을 지원한답시고 호들갑을 떨어 오히려 ‘지원대상’이라는 낙인을 붙여주고 ‘다문화’의 말뜻을 적극적으로 왜곡해왔다. 그러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지원은 허울에 불과하고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통합을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

 

글 _ 박영아 변호사

박영아

# 국제인권센터# 빈곤과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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