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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익법 교육·중개

공감 월례포럼 <빈곤의 얼굴들2> 안창영 감독과의 대화





 빈곤은 내 바로 옆에 있다


 


가난은 벼랑 끝이 아니다.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빈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빈곤은 ‘관계의 단절’이다. 안창영 감독의 영화 <빈곤의 얼굴들 2>는 철거민, 장애인, 해고노동자 등 6명의 사람을 통해 ‘빈곤에 감염돼 가는 사회’를 그리고 있다.


 






가정파괴범. 한 철거민은 정부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실제 그는 집이 철거되기 얼마 전 재혼을 했다. 그러나 가족이 집을 비운 사이 들이닥친 ‘용역’들은 ‘숟가락’ 하나조차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밀어버렸다. 남편은 도망갔고, 딸과도 헤어졌다. 집과 함께 가족의 행복도 송두리째 날아갔다.


 





“사람들은 내게 ‘안 돼’라는 말부터 한다”는 장애인의 말에는 서러움이 응축돼 있다. 아버지는 물론 형제까지도 그에게 시설에서 살다 죽으라고 했다. 그는, 자신 같은 장애인은 시설에서 살다 죽어야만 하는 줄 알았단다. 적어도 얼마 전 ‘자립’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그러나 ‘빈곤’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기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쌍용차, 한진중공업 등 대기업의 직원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넉넉하진 않더라도 ‘집주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날 수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건 이 스토리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전에는 몰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취업을 위해 지난 몇 년간 불투명하게 보낸 나날들’을 통해 이들에게 공감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물론 “나도 저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서러움이 북받치고, 표현할 수 없는 울분 혹은 분노가 솟구치기도 했다. “젊을 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빈곤은 예견된 시기에 특정 대상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말이다.


 





얼마 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주최한 월례포럼에서 만난 안 감독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2003년 김주익 열사의 추도식 당시 김진숙씨(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의 추도사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아서 깨지는 것이다.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면 아무리 소름 끼치고 치가 떨려도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다.”


 





복잡하게 엉킨 빈곤의 실타래에서 무엇을 먼저 풀어야 하는지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희망버스’를 떠올려보면 의외로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당시 평범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정리해고 철회’라는 변화를 이끌어냈다. 오늘도 여전히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농성촌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견디며 “함께 살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또한 나와 다르지 않은 내 이웃이다.


 


 







글_ 서영지 (16기 자원활동가)


 


 







*이 글은 한겨레신문 12월 6일 29면 ‘왜냐면’에 실린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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