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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고용허가제# 노동인권# 이주여성

“고용허가제의 허점이 빚어낸 비극” –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 활동에 함께하며

최저 영하 18도에 이르는 강추위로 인해 경기도 일대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졌었던 지난 해 12월 20일, 한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날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의 故 속헹씨는 2016년 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4년간 한국의 농장에서 일을 해왔고, 체류기한 만료를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 티켓까지 끊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부검결과 그녀의 사인은 ‘식도정맥류 파열’.

건강한 몸으로 코리안드림을 꿈꾸었던 청년이, 왜 4년 뒤 타국의 비닐하우스에서 서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이주인권단체들은 입을 모아 그의 죽음은 ‘고용허가제의 허점이 만들어낸 비극’이라고 꼬집습니다.

 

故 속헹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고용허가제 허점 – 1. 방치된 건강 상태

2016년 고인이 입국하여 처음 받은 건강검진에서는 이상소견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직접적인 사인이 간경화라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악화될 때까지 조치를 취하지 못 한 걸까요?

현행 제도상 고용주가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노동자를 초청하고자 할때, 제조업이나 건설업, 서비스업은 직장보험가입이 의무화되는 사업자등록이 필수적이지만, 농축산업의 경우 농업경영체등록으로 사업자등록을 대신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 배정되어 일했던 고인은 입국하여 사망할때까지 두 농장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사업자등록이 되지 않은 농장들이었기 때문에, 고인은 (외국인노동자의 지역건강보험 가입이 의무화되었던 2019년 7월 전까지) 3년간 건강보험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고인이 직장보험가입이 의무화된 사업장에서 일했다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치료비 부담 없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입니다.

 

故 속헹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고용허가제 허점 – 2. 열악한 노동, 숙식환경

고인이 사업주로부터 제공받아 사용해 온, 그리고 고인이 사망한 장소인 기숙사는 고인이 일하던 농장 한가운데 위치한 비닐하우스 간이 건물입니다.

이 비닐하우스 기숙사는 한파 주의보가 내려질 정도의 추위를 전혀 막을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대책위가 확보한 고인의 동료 이주노동자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이 사망하기 전 영하 10도 이상, 최저 영하 18도에도 이르는 추위가 일주일가량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내 난방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어떻게 이런 곳을 숙소로 제공하고, 기숙사비를 받고, 계속해서 이주노동자들을 고용할 수 있었을까요?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환경에 대한 개선요구에 따라, 2019년 근로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마련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 샌드위치 패널, 컨테이너 등의 가설건축물들은 최소한의 기준만 충족한 상태로 여전히 기숙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을 기숙사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존의 제도, 이런 기숙사를 제공하고도 기숙사비를 임금에서 제할 수 있게 한 고용노동부의 지침 – 모두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겠습니다.

 

故 속헹을 사망에 이르게 한 고용허가제 허점 – 3. 사업장변경 제한

본인이 배정된 사업장의 노동조건이나 기숙사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다면, 좀 더 나은 곳으로 가면 되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사망한 속헹씨처럼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사업장의 휴폐업이나, 외국인근로자 사업장 변경에 관한 고시로 정한 수준에 이르는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경우가 아니라면) 고용주의 승인없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를 위반하게 되면 고용주의 신고로 미등록외국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열악한 주거환경이라도, 아무리 살인적인 근로조건이라 할지라도,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하기위해서는 무조건 참고 일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영하 18도에 이르는 추위 속에서 난방장치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숙소에 살아야 했던 고인과 동료들에게 사업장변경의 자유가 있었다면, 과연 그가 싸늘한 숙소에서 홀로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했을까 또 한 번 의문을 갖게 되는 지점입니다.

 

 

고인의 사망 직후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대책위원회’가 만들어 졌고, 공감도 대책위원회의 대리인단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농지법, 건축법, 근로기준법 위반 소지가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와 관련하여 고용주에 대하여 고발장을 제출하였고, 국가 인권위원회에 해당 기숙사에서 고인과 함께 숙식하며 일했던 동료이주노동자들을 고용주로부터 분리할 것을 요청하는 긴급구제신청도 제기하였습니다.

 

2020. 12. 28. 청와대 앞에서 진행한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대책마련을 위한 기자회견’

 

관련기사 : 한국농정 /  ‘예견된 비극’ … 이주노동자 거주권 보장해야

 

고용허가제로 매년 5만 5천명의 이주노동자가 입국합니다. 그리고 현재 2만 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아직도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습니다. ‘예견된 비극’이라면 그 비극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누구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도록, 활동을 이어가겠습니다.

김지림

# 국제인권센터# 성소수자 인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