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합의, 청년 일자리의 희망인가 – 김혜진 활동가와 함께한 공감 월례포럼
9월 13일, 한국노총이 노동계 대표로 참석한 채로 노사정 합의가 이루어졌다. 고용노동부는 드라마 미생의 임시완을 캐스팅하여 광고를 만들었고, 임시완이 연기하는 장그래는 광고 속에서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청년 일자리가 해결됩니다’ 라고 말했다. 이와 상반된 주장을 하는 장그래가 등장했다. 360여 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는 9월 17일, 노사정 합의에 반대하며 시국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노사정합의가 청년들을 평생 비정규직으로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가 노사정합의에 반대하며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8박 9일의 농성을 하는 동안, 정부 광고 속의 장그래는 광화문 빌딩 위의 전광판에서 노사정합의에 찬성했다. 2015년 9월의 광화문에는 두 명의 장그래가 있었다. 한 명은 빌딩 위에서 노동개혁을, 다른 한 명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노동개악을 외쳤다.
‘노동개혁은 우리 딸과 아들의 일자리입니다’ 라고 외치는 정부의 목소리는 TV와 라디오에서, 심지어 고향에 오가는 추석의 KTX에서도 충분히 들을 수 있었으므로, 우리는 다른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공감은 장그래살리기 운동본부에서 정책팀장을 맡고 있는 김혜진 활동가를 모시고 청년 일자리와 노사정합의에 대한 월례포럼을 진행했다.
불행하게도 청년 문제는 이데올로기적 도구일 뿐입니다.
처음에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청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2015년 2월 전까지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은 ‘노동시장 양극화’ 즉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갑자기 정부는 2015년 2월부터 ‘청년 일자리 문제’를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결합하기 시작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려고 한 정부는 추진의 정당성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고민했다. 처음에는 비정규직 문제를 꺼냈으나, 비정규직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청년 일자리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오래 일하고 일자리는 많아지는 임금피크제? (고용노동부 광고)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청년 일자리 문제를 연관시킬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임금피크제이다.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통해 청년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주장한다. 임금피크제는 고령화로 인해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올린 것에 대해 기업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제기된 것이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보면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연장된 근로기간인 58세 이후에는 임금을 깎는 정책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실제 임금피크제는 정년(60세)의 5년 전인 55세부터 임금을 깎는 것으로 설계되었다. 이런 설계 하에서 개별 노동자는 정년이 늘어 2년간 일을 더하는데, 근무 기간 동안 받는 임금의 총합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2년 동안 일을 더 시키는데, 더 일한 2년에 대해서는 돈을 주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당연히 반대했다. 그래서 정부는 임금피크제를 ‘청년 일자리 문제’와 결합하기 시작했다. 임금피크제를 통해 임금을 깎으면 이 깎은 임금을 신규채용에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청년고용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없다. 일단 공공부문을 제외하고는 정년까지 일하는 노동자가 한국에 거의 없다. 게다가 신규채용을 위한 임금액은 임금피크제로 인한 절감 재원으로 한정되어 있다. 정년연장에 대응하는 애초의 계획은 정년이 연장되는 2년간 아무런 신규 채용을 안 하는 것이었는데,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절감된 임금만큼 신규 채용을 한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채용 인원을 줄이면 초임이 늘어나고, 반대로 신규 채용 인원을 늘리면 초임이 떨어진다. 정부는 신규 채용되는 노동자들을 별도 정원으로 반영하며 별도 직군으로 구분 적용하겠다고 한다. 결국, 청년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했을 때의 임금을 깎아서 별도의 직군을 만들려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정부는 이를 굉장한 일자리 창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일자리 창출은 결국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고, 이런 일자리들이 기존의 일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추진하려는 근본적인 이유는 결국 임금체계개편에 있으며, 청년은 하나의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130만 명의 노동자들
▲ 김혜진 활동가
“혹시 작년 한 해 동안 기업경영상의 이유로 희망퇴직, 명예퇴직, 정리해고, 계약해지를 당한 노동자는 얼마나 될까요?” 라는 김혜진 활동가의 물음에 나온 대답들은 정답에 한참 못 미치는 숫자들뿐이었다. 10만 명, 50만 명, 70만 명, 100만 명, 숫자는 올라갔고 포럼 참석자들의 놀라움은 커졌다. 정답은 130만 명이었다. 작년 한 해 동안 130만 명의 노동자들이 귀책사유 없이 회사에서 나가게 되었으며, 이는 고용노동부가 고용 보험 신청자를 대상으로 낸 통계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노사정 합의와 관련하여 현재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이 일반해고 제도이다. 지금은 징계해고와 정리해고만이 가능하다. 여기에 추가되는 일반해고는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를 가능하게 해준다. 정부는 객관적 기준, 공정한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저성과자 평가방식이 왜곡되어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을 개별 기업, 사업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과 측정이 객관적일 수 없다면, 일반해고는 기업에 순응하기만 하는 노동자를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청년 역시 당연히 이런 제도 변경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은 저성과 중장년 노동자를 해고하면 청년 고용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현재는 객관적 성과 측정이 이루어지기 힘든 상황이다. 오히려 일반해고 도입은 수습 기간 동안 성과를 강요한 뒤, 수습 기간이 끝나자 신규 직원을 전원 해고한 위메프의 사례를 양산해 낼 수 있다. 위메프 같은 블랙기업이 늘어난다면 청년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다른 미래는 가능하다
김혜진 활동가는 현재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말한다. IMF 이후 비정규직과 파견노동이 허용되며 노동환경이 급격하게 변했고, 이제 노사정 합의를 통해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나려는 상황이다. 현재의 고용불안정은 특정한 시기에 내린 정치적 선택의 결과이며, 다른 선택과 결과는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현재 세계 경제는 대부분 비슷하게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그런데 일본은 후생성보고서를 통해 지나친 유연화의 가속화가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진단한다. 한국에도 비정규직 확대와 쉬운 해고 같은 노동유연성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고용과 소득을 보장하고 내수를 강화하여 위기를 타개하자는 소득주도성장론도 존재한다. 일본 후생성의 주장이나 소득주도성장론이 모두 타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분명 다른 진단과 해결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른 미래를 꿈꾸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다른 미래에 대한 고민에는 고용의 안정성, 청년 일자리, 대기업-중소기업 문제와 더불어 삶의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가 함께 필요할 것이다.
스펙보다 데모를!
그러나 문제제기만으로 다른 미래는 오지 않는다. 유연안정성 모델에 대한 월례포럼 준비팀의 질문에 김혜진 활동가는 네덜란드의 유연안정성 정책은 강력한 노동자 집단과 이를 대변하는 정당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답변했다. 제도의 남용을 막는 것은 현장의 힘이다. 마찬가지로 청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의 힘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한 활동가는 청년문제가 심각한데도 청년조직이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 의아해했다고 한다.
스펙을 쌓느라 도서관에 있는 청년들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청년을 둘러싼 사회의 압력은 막강해서 쉽사리 다른 생각과 행동을 허용하지 않는다. 거리에 나간다고 당장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직접 말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우리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 않는다. 청년은 그저 정책 홍보를 위해, 선거를 위해 소모될 뿐이다. 그러니 가끔은 우리의 요구를 사람들에게 시원하게 말해보자. 거리에 나가 우리의 불만을 말해보고 새로운 대안을 꿈꿔보자. 우리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글_이진욱(공감 22기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