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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건강보험 개선방안'으로 멀어지는 이주민 건강권 _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2018.06.29 14:06 5257
작성자 공감지기

 

 

산소처럼 물처럼, 있을 때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건강보험이 그렇다. 건강보험의 존재는 지금은 너무 당연해서 마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존재하게 된 때부터 있었던 듯 느껴진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체계가 확립된 것은 1989년이니 사실 그 역사는 매우 짧다.

 

건강보험체계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고 보장이 점차 확대되기까지 아마도 많은 사람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기여한 바가 없는데도 운 좋게 대한민국 국민의 자녀로 태어나 어려서는 피부양자로, 나이가 들어서는 직장 또는 지역가입자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려왔다. 그래서 병원비와 약값으로 내 돈 10만원을 냈을 때 40만원 쯤은 보험공단이 내 준다는 사실도 곧잘 잊고 살아왔다.

 

나의 행운을 절감하기 시작한 것은 건강보험 가입이 당연하지 않은 이주민들을 만나면서부터였다. 건강보험이 없는 이주민들은 10만원이 아니라 50만원이 있어야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때로는 의료관광객으로 분류되어 50만원×2=100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건강보험이 없는 이주민들이 너무 많다. 미등록체류자는 애초에 건강보험 가입에서 배제되어 있지만 장기합법체류이주민은 국민건강보험법의 특례조항에 따라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2017년 건강보험 가입률은 60%에 불과하다. 같은 시기 전체 인구의 건강보험 가입률 96%에 비해 너무 낮다. 이주민의 건강보험 가입에 갖가지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6월 초 보건복지부가 외국인 및 재외국민 건강보험 제도 개선으로 도덕적 해이는 방지하고 내외국인간 형평성은 높인다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보도자료에서 사용한 도덕적 해이’ ‘내외국인간 형평성’ ‘체납 시 불이익’ ‘자격 상실 후 급여 이용 차단’ ‘부정수급 시 처벌 강화와 같은 용어들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그동안 허용하지 않던 인도적 체류자의 지역건강보험 가입 허용 외에는 이리 저리 뜯어보아도 개선보다는 개악인 방안이었다. 이주민의 지역가입을 의무화하면서 보험료 산정에서 차별은 유지하고, 지역가입 가능 시기는 입국 후 3개월에서 6개월로 연장하며, 피부양자 등록을 위한 가족관계 증명을 본국 외교부 확인까지 요구하는 등 요건을 강화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를 보면서 지수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베트남 사람인 엄마를 병으로 잃은 지수는 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랐다. 작년 봄 처음 만났을 때 지수는 어디에도 출생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초등학교에 입학한 올해 베트남 대사관에 겨우 출생등록을 하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읍소해서 방문동거(F-1) 비자를 받았다. 지수의 체류자격을 신청하기 전에 며칠 밤을 고민했었다. 서류상 외국인임이 분명해지면 지금까지 받고 있던 생계급여, 의료급여 등 수급자격을 잃게 된다. 차라리 그냥 이대로 지내는 게 더 안정적인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다행히 체류자격을 받은 후에 해당 지자체에서 그 전과 똑같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건강보험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방문동거(F-1), 거주(F-2), 영주(F-5), 결혼이민(F-6) 체류자격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확인된 소득재산에 따라 지역보험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F-1 체류자격을 가진 지수의 지역보험료는 몇 천 원 밖에 되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 외 체류자격을 가진 외국인은 산정된 보험료가 전년도말 지역가입자 세대당 평균보험료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도 무조건 약 9만원인 평균보험료를 내야 한다. 실직 상태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보건복지부 개선방안에서 이제 내국인과 동일한 기준으로 보험료를 책정하는 체류자격에 영주(F-5), 결혼이민(F-6)만이 언급되어 있었다. . 지수는 어떻게 하나? 9만원 보험료를 누가 내 준단 말인가.

 

그동안 직장건강보험 가입자격을 얻지 못하고 전년도말 지역가입자 세대당 평균보험료 이상이라는 차별적인 지역건강보험료가 벅차서 건강보험 가입을 포기한 이주민들을 많이 보아왔다. 예술흥행(E-6) 이주노동자, 가사노동자, 영세서비스업 종사 이주노동자고용허가제 노동자들 중에서도 사업자등록증이 없는 사업장의 근로자여서 직장가입자격이 없는 이들이 많다. 경기도외국인인권지원센터가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4월 기준 전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의 51%가 그러했다. 이는 어업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고용노동부는 이런 내용 자체를 잘 모르고 있었고, 건강보험공단은 사업자등록증이 없으면 실질적인 고용관계에 있어도 직장가입자격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반면에 이주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건강보험의무가입사업장이 건강보험에 제대로 가입하고 있는지 감독을 하더라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동안 많은 이주민들이 직장은 자격이 안돼서 가입을 못하고, 지역은 형평에 맞지 않는 차별적인 보험료 책정으로 너무 비싸서 가입을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무조건 지역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보험료를 안내면 체류자격을 연장할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한다. 이주민들은 그야말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건강권(건강할 권리, 보건의료에 대한 권리, 보건의료체계 내에서의 권리)은 인권, 즉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보편적비차별적 권리이다. 또한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능력껏 함께 모으고, 필요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보험이다.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이 영리목적의 실손보험이 흉내 낼 수 없는 힘을 가지는 이유는 그 대상과 적용범위가 넓어서 개개의 작은 부담으로도 유지가 가능한 규모의 경제를 가지기 때문이다. 점점 그 수가 늘어나는 이주민 인구, 비교적 젊고 의료서비스 이용가능성도 더 낮은 인구의 건강보험 가입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사회보험으로서 건강보험의 재정과 유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주민들을 진퇴양난에 빠뜨리는 보건복지부 개선방안의 목적은 뭘까? 보수언론이 건강보험 먹튀니 무임승차니 운운하며 보도한 몇몇 사례들을 무마하려는 시도일까? 아니면 외국인의 건강보험 가입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댓글들에 대한 면피성 대책일까? 어느 쪽이든 간에 이주민 당사들에게는 건강보험 가입 장벽을 높이고, 안정적인 체류를 위협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임에는 틀림없다.

 

글 _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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