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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예방·구제하는 활동을 진행합니다. 특히 출입국과 관련하여 단속·보호·강제퇴거 절차상의 인권 보호를 위한 활동과 난민신청자들이 적절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심사를 받고,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The Brave : 용기 _ 깁지용(펠로우, 미국 변호사) 2017.07.19 15:07 967
작성자 공감지기

 

 

  평생 동안 나는 특정나라의 시민권을 갖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권리'인줄만 알았다. 특히 여행을 할 때 출입국에 여권을 보여주고 통과되는 절차 등은 쉽고 당연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런 것들이 행운아들에게만 주어진 권리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입양인들의 문제에 대해 들었을 때도, 심각성의 깊이조차 인식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나이 또래인 80 년대 미국에 입양 된 입양인들과 처음 만났을 때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입양 가정에 의해 구타, 폭행, 감금을 당하다니! 정말 가능한 얘기들인가? 나는 부모가 아이들을 양육하고 사랑을 주기 위해 입양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왜 그들은 비싼 돈과 노력을 주고 해외에서 입양까지 해서 그들의 삶을 망치는 걸까?

 

 

  입양인들은 알려진 것처럼 다양한 문제를 접하게 된다. 시민권 미취득 문제부터 뿌리를 찾기 위해 필요한 본인의 입양 기록에의 접근 문제, 그리고 요즘 많이 일어나는 추방 문제 등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문제들을 겪고 있다.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내가 담당하게 된 입양인을 만난 순간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수년간 혈통을 찾기 위해 혼자 온갖 힘을 다해왔다. 입양기관에서는 친 가족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본인의 입양서류 열람을 못하게 해왔다. 그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그의 나이가 50대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또래인 줄 만 알았는데 깜작 놀라며 물었다. "당신의 젊음의 비결은 무엇인가?“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나도 모르겠다. 나도 그게 궁금해서 친가족을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 이 대답을 듣고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에 부끄러워졌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간의 정상적인 대화 일 수도 있었겠지만 입양인들과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언어부터 주의를 기울여야하고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렇고 본인의 정체성을 모르는 수많은 입양인들은 불안, 우울증 및 극도의 정서적 고통과 같이 생명을 위협하는 다양한 병을 겪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서도 끝나지 않는다.

 

  두 번째 클라이언트는 그가 일하는 이태원 한 식당에서 만났다. 오후 5시에 식당이 열리기 전에 그는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그는 입양 보내진 후 미국에서 여러 가정을 오고 가며 육체적, 정신적, 정서적 학대로 고생을 했다. 그리고 약 10년 전 동료의 범행으로 인해 한국으로 추방되었다. 그는 그의 권리와 인권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20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비행기로 한국에 보내졌다. 더욱더 기가 막힌 것은 그의 친모는 그가 입양 보내졌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친부가 그를 유괴를 해서 단독적으로 입양을 보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생모는 10년 동안 그를 찾고 있었다. 현재 그는 해외입양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으며, 다른 사람이 그가 몇 년 동안 겪었던 고통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언젠가는 미국을 방문하여 친구들과 가족을 만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이라고 평생 알아온 것이다. 당신이 원한다면 미국을 방문 할 수 있는 옵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정말로요? 할 수 있어요?"라고 되물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재입국에 대한 준비를 꾸준히 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아무나 적응하기가 어렵다. 조금이라도 남과 다르고, 예의, 문화에 어긋난 행동을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이런 상황이 지속이 된다면 궁극적으로 고립 될 수밖에 없다.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입양인들에게는 이 모든 문제가 발생한 한국에 돌아와서 생활 하는 게 정말 어려웠을 것이다.

 

 

  생각을 해봤다. 부모님이 나를 버리고 태평양을 건너 낯선 나라로 보냈다면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다시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과연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모든 게 다 내 잘못인가? 나는 사랑을 못 받는 존재인가? 내 인생은 답이 없는 일련의 질문들의 반복이 될 것이고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의지조차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입양인들은 달랐다. 이들은 밝고 긍정적이고, 똑똑하고, 좌절하지 않고 또 유머러스하며 절망의 흔적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돕기 위해 고안된 입양시스템에 배신을 당한 상황에 놓여있음에도 불구하고 굳건하다. 이들은 본인에게 일어난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게 하지 않기 위해 확신을 가지고 싸운다. 본인의 생계유지도 어려울 것이 뻔한데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 열심히 일한다. 이들이야 말로 인권 옹호자라고 불려져야 한다.

 

 

  5월 24 일에 고 필립 클레이(Phillip Clay)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필립 클레이는 미국에서 추방 된 이후 심리적인 문제를 겪은 후 비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끝냈다. 이날 입양인들, 정부, 홀트 및 기타 입양조직을 포함한 단체의 사람들이 갈등들을 뒤로 한 채 한자리에 함께 모였다. 모두 필립 클레이만을 위해 모인 것이다. 한 입양인은 ‘저 관에 누워있는 사람이 본인이 될 수도 있었다’라며 애도를 표했다. 보통 장례식에는 친구 및 가족이 참석 한다. 그러나 이날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입양인들이었다. 이것을 보면서, 나는 더 깊이 있는 장례식이라 생각이 들었다. 결코 필립 클레이의 마지막만큼은 외롭지 않았을 것이라 장담한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미국에 입양 되어 다시 한국으로 추방당하고 죽은 뒤에나 그렇게 돌아가고 싶었던 미국에 가게 된 것은 정말 아이러니 한 일이고 매우 슬픈 현실이다.

 

 

▲ '광화문 1번가'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해외입양 중단을 촉구하는 선언문을 전달한 입양인 및 관련 단체 활동가들

 ⓒ프레시안(전홍기혜)

 

  7월 12 일에는 모두가 ‘뿌리의집(KoRoot-해외입양문제의 해결을 모색하는 시민단체)’에 모여 기자 회견을 갖고 새 정부에 산업화된 국제 입양을 중단하라는 선언에 서명하고 제출하였다. 정부가 싱글맘들 에 대한 지원을 강화, 입양 서비스 개선, 더욱더 집중화된 입양 기록, 그리고 추방된 입양인들 에게 적절한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촉구했다. 또한 모든 입양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 조사단을 출범 시키도록 정부에 요청했다. 이날 한 입양인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80년대 입양된 수많은 입양인들은 우리만의 공동체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같은 목적을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 우리는 결코 외롭지 않다. 하지만 요즘은 우리 때처럼 숫자가 많지는 않아서 그들은 우리와 같은 공동체가 없다.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공동체가 없으면 더욱더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미국에서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버려진 아동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에 보내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아동에게 최선의 이익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꿈꾸는 미국, 그 아이를 위해 가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이것은 입양인들과 직접 소통을 하지 않으면 와 닿지 않는다.

 

  나는 남들이 다 누리는 권리가 더 이상 특권이 아니라 명확히 모두 다 누릴 수 있는 권리로 실현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싸울 것이다. 입양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김지용 _ 공감 펠로우, 미국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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