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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침해_손아람 작가 2019.05.17 11:05 2283
작성자 공감지기

 

  시골집에 내려가면 외삼촌 세 명이 번갈아 어린 나를 돌보았다. 외삼촌들의 차로 다녔던 아름다운 장소들이 아직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성인군자나 다름없던 목사 외삼촌의 입에서 운전중 이상한 단어가 불쑥 튀어나오는 걸 듣고 화들짝 놀랐던 적이 있다. 아마 그는 나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다혈질인 치과의사 외삼촌의 운전 매너는 달랐다. 한번은 신호대기중인 그의 새 차를 다른 차가 들이받았다. 황급히 내린 상대운전자가 흠씬 두들겨 맞을 거라 예상했지만, 외삼촌은 자동차는 원래 소모품입니다, 라면서 그냥 보내주었다. 그 말이 너무 멋지게 들려서 내 차를 갖게된 뒤로 몇 차례 써먹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기억은 큰외삼촌의 운전 매너다. 산 만한 덩치에 지역의 알아주는 주먹이었다는 그의 차를 탔던 날이었다. 좁은 도로 위에서 리어카를 끌고가는 할머니 뒤로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지나가는 차마다 경적을 울리고 욕설을 해댔다. 큰외삼촌은 할머니 뒤에 차를 세우더니, 운전석에서 내려 성난 운전자들을 위압적인 표정으로 제압한 다음 리어카를 길가로 옮겼다. 짐은 나중에 실어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그는 할머니를 차에 태웠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의 내부는 마음속 깊은 곳과 같아. 인간 내면의 가장 억압된 부분이 드러나는 거란다.” 사실인 것 같다. 티끌 하나 잡기 어려운 심성을 가진 친구들이 폭력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모습을 보곤 한다. 너 왜 그러냐, 라고 물었더니 한 친구는 내 아버지의 이론으로 대답했다. “미쳤나봐, 차만 타면 해방된 것처럼 느껴져.” 
 
  아무리 고상한 위인이라도 운전중 시비를 겪어보지 않았을 리는 없다. 우리 모두가 아는 비밀이다. 선종 직전까지 면허 시험을 준비했다는 김수환 추기경도 생전에 자가운전자가 됐다면 이 운명에 직면했을 것이다. 창문을 내리자마자 욕설을 쏟아붓는 운전자를 피하기는 어렵다. 말려들지 않고, 품위를 지키면서, 최소한의 감정적 배출구를 남겨두는 나의 대응책은 이렇다. 말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것이다. 직업이 작가라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 듯하다. 영화에서는 상대 역시 셋째 손가락을 내밀어 응답하고, 서로 등을 돌려 쿨하게 제 갈 길을 간다. 
 
  하지만 늘 그렇게 되진 않는다. 창문을 내리고 욕설을 해대는 트럭기사에게 셋째 손가락을 내밀었던 어느날, 트럭은 시속 100킬로미터로 차들이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차를 바짝 붙여 위협하며 내 목적지까지 쫓아왔다. 그때는 너무 화가 나서 블랙박스를 들고 경찰서에 갔다. 트럭은 대기업 물류 운송용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회사 담당자는 비정규직 운전 기사를 공급하는 외주업체와 계약을 해지하는 방안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곧 외주업체 담당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도와달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운전기사의 개인적인 사과를 받을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난감해하며 대답했다. “우리가 사과를 억지로 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인권 문제이지 않습니까.” 뜨끔할 정도로 맞는 말이라, 정기 안전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일을 마무리 지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욕설을 퍼붓는 운전자에게 셋째 손가락을 내밀었다가 경찰에 신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차를 앞질러 세워 2차선 도로 전체를 가로막아 둔 뒤 ‘인권침해죄’로 나를 처벌해달라고 진술했다. 그를 비난하거나 내 억울함을 하소연하려는 게 아니다. 내 중지에 담긴 의미가 그가 가진 인권의 어떤 부분을 침해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인권의 정의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인권 침해란 단어를 이렇게 사용하는 것은 직관을 거스른다. 정의 감각은 본능적으로 비례의 원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질문들을 해볼 수 있는 것이다. 
 
  강경 진압으로 부상자가 100명 넘게 나온 집회에서 한 변호사가 흥분한 시위대를 향해 외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여러분 혹시 반격하더라도 경찰을 죽이지는 맙시다. 불쌍하잖아요!” 그건 인권 침해일까? 경영 실패로 회사를 부도내고 수천 명의 직원을 정리해고 하더니, 정작 자신은 거액의 비자금을 챙겨 달아난 대표이사의 저택을 점거한 시위대를 본 적이 있다. 그건 인권 침해일까? 자신을 내쫓기 위해 월세를 네 배 올리고 용역 깡패를 동원해 손가락 네 개를 절단시킨 건물주를 향해 망치를 휘두르며 위협했던 세입자는? 그것도 인권 침해일까?

 

글 _ 손아람 /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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