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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봉준호와 안판석 _ 차혜령 변호사 2019.05.29 17:05 551
작성자 공감지기

봉준호 감독이 지난 5월 25일 영화 기생충으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봉테일(봉준호+디테일)’로 불리는 감독을 축하하며 수상일을 봉축일이라고배우 송강호와 함께 호호 콤비이라고 부르는 말이 유행하는 와중에, ‘표준 근로계약서라는 말도 화제가 되었다이 영화를 찍을 때 모든 스태프와 표준 근로계약서를 썼고 나의 예술적 판단으로 근로시간과 일의 강도가 세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는데 표준 근로계약서에 맞춰서 촬영하는 게 편했다는 감독의 말 때문이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의 힘인지 영화계 표준 근로계약서 도입에 대한 보도가 잇따랐다계약기간초과 근로수당, 4대 보험 가입과 같은 내용이 담긴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은 2014년 영화 국제시장을 시작으로 점차 늘어났으며그에 앞서 2005년 영화 제작연출조명촬영 등 영화 스태프가 가입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이 설립되면서 이같은 영화계 노동환경 개선의 계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그러면 방송계는몇 년 전 안판석 피디는 드라마 밀회를 마친 후 연출가로서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이 충분히 자고충분히 쉬며 촬영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이 그 어떤 성취보다 자랑스럽다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모든 예술은 휴머니즘을 위해 존재하는 건데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일상의 행복이 무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작품의 질성공과 실패 이런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거라고 본다철저하게 쉴 시간을 주고잘 시간을 주고씻을 시간을 주고노닥거릴 시간을 주고그걸 지키는 게 첫 번째 목표다내가 잘 한 것은 그걸 지켰다는 거다.”(맥스무비, 2014. 5. 20. 인터뷰당연하게 들리는 이 얘기가 안판석 피디의 자랑이 될 수 있는 것은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극히 예외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흔히 사람을 갈아넣는다고 말한다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이미지를 떠올리기조차 무서운 말이지만초장시간고강도저임금 노동에 익숙한 한국 사회는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람을 갈아넣어’ 만들었다고 서술하는 것에도 익숙해졌다방송현장에서는 집합부터 촬영 종료까지 하루 20시간 이상의 노동밤샘 촬영이 일상이고새벽에 퇴근하자마자 아침에 곧바로 다시 출근해야 해서한 화면이 사라지면서 다른 화면이 겹쳐 나타나는 장면 전환 기법을 이르는 디졸브에 빗댄 디졸브 노동이 방송계 스태프 노동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이 되어 버렸다우리가 오늘 본방사수하려는 드라마가 사람을 갈아넣는’ ‘디졸브 노동의 산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시청자의 자세로 방송을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작년에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 지부가 창립됐다방송 제작 현장의 스태프와 비정규직 노동자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공감도 방송스태프 노조에 힘을 더하고 있다영화계의 노동환경이 영화산업노조의 오랜 활동으로정부와 영화계를 선도하는 기업의 참여로표준계약서 도입과 같은 제도 개선으로 달라질 수 있었던 것처럼방송스태프 노동자의 노동 현실에도 변화가 오기를 기대한다.

 

예술은 노동이다예술산업에도대중문화 예술산업에도 노동자가 있다인권을 양보하지 않고도, ‘사람을 갈아넣지’ 않고도 예술은 가능하다가능할 뿐만 아니라 최고 수준의 예술적 성취와 대중적 성공이 가능하다봉준호 감독과 안판석 피디가 이를 보여주었으니다음 차례는 개인의 의지에만 기대지 않는 제도의 변화다.

 

-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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